같은 에너지 충격, 다른 마진: 기업 회복력의 5개 판단 기준
같은 업종에서 비슷한 에너지를 쓰는 두 기업의 실적이 정반대로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한쪽은 원가 상승을 이유로 가동률을 낮추고 현금을 지키지만, 다른 쪽은 생산을 유지해 경쟁사의 빈자리를 차지합니다. 에너지비 비중이 더 낮은 기업이 재고와 차입 부담 때문에 먼저 흔들리는 경우도 생깁니다. 비용 노출이 비슷하면 마진 충격도 비슷할 것이라는 기준으로는 이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유럽중앙은행의 2026년 금융안정보고서는 에너지 집약 산업과 공급망 노출 업종이 취약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직접 에너지 집약도가 낮은 기업 역시 실질소득 감소와 투자 지연에 따른 수요 위축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같은 보고서는 기업대출 기준이 2026년 1분기에 예상보다 크게 강화됐고 신규 대출의 금리·담보·위험마진도 높아졌다고 설명합니다. 비용 노출, 수요와 자금조달이 한꺼번에 움직이면 에너지 집약도는 출발점일 뿐 결론이 아닙니다.
에너지 집약도는 비용충격의 노출을 보여줄 뿐 마진과 현금흐름의 최종 결과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계약조건이 비슷한 기업도 판매할 제품을 바꿀 수 있는지, 공정과 투입원료를 조정할 수 있는지, 재고를 얼마나 빨리 현금으로 바꾸는지, 충격을 견딜 유동성이 있는지, 경쟁사 감산을 주문으로 흡수할 수 있는지에 따라 손익이 갈립니다. 정적인 원가비율보다 충격 중 선택 가능한 행동의 수가 중요합니다.
같은 집약도, 다른 손익
에너지 집약도는 보통 에너지 비용을 매출이나 부가가치로 나눈 비율로 표현합니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가격 상승이 단위당 원가에 미치는 1차 영향은 큽니다. 하지만 매출총이익 민감도는 그 다음 단계에서 결정됩니다. 판매가격, 물량, 제품믹스, 수율, 가동률과 재고평가가 움직이면 동일한 원가 상승도 전혀 다른 이익률로 번역됩니다.
예를 들어 매출 100, 변동비 60, 고정비 25인 기업에서 에너지비가 변동비의 20%를 차지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에너지 가격이 25% 오르면 다른 조건이 같을 때 비용은 3 증가합니다. 그러나 판매가격을 3% 올리고 물량을 유지하면 기여이익은 대부분 회복됩니다. 반대로 가격을 5% 올린 뒤 물량이 8% 줄면 단위당 마진이 개선돼도 고정비 회수가 나빠져 영업이익은 더 크게 감소할 수 있습니다.
이 계산에서 에너지 집약도는 첫 번째 숫자일 뿐입니다. 제품 대체가 쉬운지, 고객이 공급자를 바꿀 수 있는지, 생산량 감소가 단위당 고정비를 얼마나 높이는지에 따라 결과가 바뀝니다. 에너지비가 낮은 조립기업도 주요 중간재 가격과 물류비가 오르고 최종수요가 약해지면 마진 압박을 받습니다. 직접 노출과 공급망을 통한 간접 노출, 수요 충격을 나눠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난 글은 매입·재고·판매·수요·현금의 시차가 가격 전가를 어떻게 바꾸는지 다뤘습니다. 계약조건이 비슷해도 운영모델과 재무구조가 마진 격차를 만드는 이유가 이번 분석의 대상입니다. 계약이 기업에 가격을 조정할 권리를 준다면, 운영모델은 그 권리를 실제 이익으로 바꿀 수 있는 범위를 정합니다. 재무구조는 그 선택을 실행할 시간을 제공합니다.
제품 대체가능성과 믹스
제품 대체가능성과 믹스 전환은 같은 공장에서 더 높은 기여이익을 남길 수 있는지를 결정합니다. 원료와 에너지가 비싸질 때 모든 제품의 수익성이 같은 폭으로 나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고객 인증이 까다롭고 대체 공급자가 적은 특수등급은 비용을 더 쉽게 전가할 수 있지만, 범용 제품은 수입품과 재고 물량에 가격이 눌릴 수 있습니다. 평균 판매가격과 평균 원가만 보면 이 차이가 사라집니다.
2025년 석유화학 시장은 이 구분을 잘 보여줍니다. LyondellBasell의 2025년 실적 발표에 따르면 북미 폴리에틸렌 체인은 높은 원료비와 공급과잉의 압박을 받았고, 유럽 폴리머는 낮아진 원료비에도 수입경쟁 때문에 마진이 줄었습니다. 반면 Advanced Polymer Solutions는 마진 개선, 포트폴리오 최적화와 신규 사업 수주가 실적을 지지했습니다. 같은 그룹의 에너지·원료 환경에서도 제품군과 고객구조가 손익을 나눴습니다.
믹스 전환은 가격표를 바꾸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설비가 여러 등급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하고, 원료 조합과 촉매·공정조건을 바꿔도 수율과 품질이 유지돼야 합니다. 자동차·의료·전자용 소재는 고객 재인증에 시간이 걸리므로 주문이 있다고 바로 생산을 옮길 수 없습니다. 공정 호환성, 인증 리드타임과 영업 파이프라인이 함께 있어야 제품 선택권이 경제적 가치가 됩니다.
제품 포트폴리오의 질은 충격 전 평균마진보다 충격 중 전환 가능한 물량으로 측정하는 편이 낫습니다. 전체 생산능력 가운데 어느 정도를 다른 원료·등급·시장으로 옮길 수 있는지, 그 제품의 증분 기여이익이 얼마인지 봐야 합니다. 고부가 제품 비중이 높아도 설비가 이미 완전히 가동 중이면 추가 주문을 흡수할 여지가 없습니다. 반대로 평시 마진이 낮은 범용 설비라도 경쟁사 셧다운 때 즉시 물량을 늘릴 수 있다면 옵션가치를 가집니다.
매출 구성의 변화도 가격 전가로 오인하기 쉽습니다. 평균 판매가격이 올랐더라도 저가 제품 물량이 줄고 고가 제품 비중이 늘어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이때 단위당 가격 상승은 계약상 전가력이 아니라 믹스 효과입니다. 물량, 제품별 가격, 기여이익과 설비 가동률을 함께 비교하면 실제 가격결정력을 분리할 수 있습니다.
공정 유연성과 실물 옵션
공정·원료·전력 사용의 유연성은 비싼 투입요소를 줄이거나 생산시간을 옮길 수 있는 실물 옵션입니다. 같은 에너지효율의 설비라도 한 기업은 원료 배합을 바꾸고 전력 피크시간을 피할 수 있지만, 다른 기업은 연속공정을 멈추지 못합니다. 원가표에는 비슷하게 보이는 두 설비가 가격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은 그래서 달라집니다.
국제에너지기구의 Electricity 2026는 배치공정, 냉장·압축설비, 금속의 용해·열처리처럼 일부 산업부하를 자동화나 열저장을 통해 이동하거나 단기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생산량을 크게 해치지 않고 피크시간 사용을 낮출 수 있다면 평균 전력단가와 정전 위험이 함께 줄어듭니다. 다만 IEA는 이런 기술적 유연성이 아직 충분히 활용되지 않는다고 평가합니다. 설비상 가능성과 실제 운영능력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뜻입니다.
원료 유연성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두 종류의 원료를 사용할 수 있는 공정은 상대가격이 불리해질 때 투입비중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원료가 수율을 낮추거나 부산물 처리를 늘리고 품질 편차를 키우면 명목 구매단가 절감이 총원가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조달가격이 아니라 최종 제품 한 단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료·에너지·처리비를 비교해야 합니다.
생산지역을 바꾸는 선택은 더 큰 규모의 유연성입니다. 여러 지역에 설비를 보유한 기업은 에너지·물류·환율과 고객 납기를 비교해 주문을 재배치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이전가격, 관세, 고객 승인, 항만능력과 운송시간이 이동 가능한 물량을 제한합니다. 글로벌 생산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유연성을 인정하지 말고, 최근 충격 때 생산계획이 실제로 이동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동률 계획은 공정 유연성이 손익으로 나타나는 지점입니다. LyondellBasell은 2026년 1분기 운영률을 북미 올레핀·폴리올레핀 약 85%, 유럽·아시아·국제부문 약 75%, 중간체·파생제품 약 85%로 수요에 맞추겠다고 밝혔습니다. 최대 생산이 아니라 수요와 스프레드에 맞춘 가동을 선택한 것입니다. 다만 가동률을 낮춘다고 비용이 같은 비율로 줄지는 않습니다.
가동률과 고정비 회수
감산은 현금 원가를 줄이지만 고정비 회수와 재가동 비용을 악화시켜 항상 최선의 방어가 되지 않습니다. 원료와 전력 사용은 줄어도 인건비, 유지보수, 감가상각과 안전관리 비용은 남습니다. 생산량이 감소하면 같은 고정비가 더 적은 제품에 배분돼 단위당 원가가 오릅니다. 손실을 막기 위한 감산이 보고마진을 추가로 낮출 수 있습니다.
ArcelorMittal의 2025년 연차보고서는 원료·에너지 가격 급등이 구조적인 가격-원가 불일치를 만들 수 있으며, 스프레드가 압박받으면 일부 설비의 생산을 줄이거나 멈춰왔다고 설명합니다. 동시에 설비를 세워도 모든 운영비가 사라지지 않고, 재가동 비용이 발생하며 장기 휴지는 자산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감산은 스위치를 끄는 단순한 결정이 아닙니다.
BASF 역시 2025년 독일 법인 실적 설명에서 낮은 설비 가동률이 이익에 계속 부정적이었다고 밝혔습니다. 낮은 원료·에너지 가격과 재고평가 효과는 이익에 도움이 됐지만 가동률 압박을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투입비가 내려가도 물량과 고정비 회수가 따라오지 않으면 마진 회복이 제한된다는 사례입니다.
그렇다고 물량을 끝까지 유지하는 전략이 늘 옳은 것도 아닙니다. 수요보다 많은 생산은 완제품 재고와 할인판매를 늘리고 운전자본을 묶습니다. 가격을 지키기 위해 감산한 기업은 단기 고정비 부담을 받아들이는 대신 재고가격과 현금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생산을 유지한 기업은 경쟁사가 줄인 물량을 흡수할 수 있지만, 주문이 오지 않으면 재고와 차입만 늘어납니다.
판단 기준은 감산 자체가 아니라 감산 전후의 증분현금입니다. 생산을 한 단위 줄였을 때 절약되는 현금원가, 추가되는 고정비·재가동비와 재고 감소 효과를 비교해야 합니다. 산업 전체의 감산 폭과 수입 유입도 함께 봐야 합니다. 경쟁사 감산이 가격을 올리지 못하면 개별 기업의 물량 조정은 점유율 재분배가 아니라 총수요 축소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재고회전과 운전자본
재고평가와 회전속도는 비슷한 EBITDA를 서로 다른 영업현금흐름으로 바꿉니다. 높은 가격으로 원료를 다시 채우면 현금은 구매 시점에 나가지만 비용은 재고가 판매될 때 손익에 반영됩니다. 완제품 판매가 늦어지면 원료비뿐 아니라 가공비와 고정비도 재고에 묶입니다. 손익계산서가 충격을 천천히 보여주는 동안 대차대조표는 먼저 팽창할 수 있습니다.
BASF의 2025년 말 재고는 121억6,800만 유로였고, 그해 매출원가로 인식된 재고는 313억8,400만 유로였습니다. 재고 주석은 원재료·공장용품 42억100만 유로와 재공품·완제품·상품 78억5,700만 유로를 구분합니다. 절대 재고가 전년보다 감소했더라도 제품별 회전과 가격효과가 다르면 현금 회수 속도는 같지 않습니다. 총재고 증감만으로 운영개선을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현금흐름표에서는 손익과 다른 그림이 나타났습니다. BASF의 2025년 현금흐름 설명에 따르면 영업현금흐름은 56억1,000만 유로로 전년보다 13억3,600만 유로 줄어든 수치입니다. 순운전자본 변화가 만든 현금유입은 전년보다 3억300만 유로 적었고, 매입채무 감소만으로 7억3,600만 유로가 현금에 묶였습니다. 매출채권 감소가 일부 상쇄했지만, 공급자 결제와 고객 회수의 조합이 현금을 좌우했습니다.
이 사례는 EBITDA와 현금흐름을 동시에 봐야 하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재고평가이익이나 원가 하락이 손익을 돕더라도 매입채무를 상환하고 재고를 유지하면 현금은 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재고를 빠르게 줄인 기업은 매출과 마진이 약해 보여도 현금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충격기의 회복력은 마진율과 함께 현금전환주기의 방향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재고일수가 길다는 사실도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공급중단을 앞두고 확보한 전략재고라면 생산을 유지하는 완충재가 됩니다. 수요예측 실패로 쌓인 완제품이라면 할인과 평가손실의 전조입니다. 원재료, 재공품과 완제품을 나누고, 물량·단가·회전일수와 주문잔고를 대조해야 재고의 질을 판별할 수 있습니다.
유동성과 자본배분
유동성과 신용여력은 충격기에 재고·유지보수·고객을 지킬 시간을 사는 운영자산입니다. 원료 대금을 먼저 지급하고 고객에게 외상을 제공해야 하는 기업은 가격이 오를수록 같은 생산량에 더 많은 현금이 필요합니다. 차입만기와 약정한도가 충분하면 불리한 시점의 재고매각이나 설비정지를 피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신용이 막히면 경제성이 있는 주문도 받을 수 없습니다.
ECB가 지적한 2026년 기업대출 기준 강화는 이 차이를 키웁니다. 에너지와 재고비용이 오르는 시기에 금리, 담보와 위험마진까지 높아지면 자금조달 여력이 약한 기업의 선택지가 먼저 줄어듭니다. 직접 에너지비가 비슷해도 한 기업은 재고를 유지하고 고객 결제기간을 견딜 수 있지만, 다른 기업은 물량을 줄이거나 할인해 현금을 회수해야 합니다. 금융조건이 운영결정을 강제하는 경로입니다.
LyondellBasell은 2025년에 23억 달러의 영업현금흐름을 창출했고 19억 달러를 설비투자에 사용했습니다. 연말 가용 유동성은 현금 34억 달러를 포함해 81억 달러였으며, 회사는 2026년 설비투자 계획을 12억 달러로 제시했습니다. 2025년 현금개선 프로그램은 목표 6억 달러를 2억 달러 초과했고, 일부 성장투자의 시점을 늦췄습니다. 수익성이 나쁜 시기에 투자·운전자본·주주환원 사이의 배분을 조정해 선택권을 보존한 사례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현금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회복력을 인정하면 안 됩니다. 구조적으로 낮은 스프레드의 설비를 계속 돌리면 유동성은 손실기간을 연장할 뿐입니다. 반대로 성장투자를 모두 미루면 충격 이후 경쟁사의 공급공백을 활용할 생산능력이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유지보수와 안전투자, 회수기간이 짧은 효율투자, 선택 가능한 성장투자를 구분해야 합니다.
재무분석의 순서도 레버리지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현금과 미사용 약정한도, 24개월 안의 만기, 이자보상배율, 운전자본 피크, 필수 유지보수 투자와 배당·자사주 약정을 함께 봐야 합니다. 여기서 계산되는 것은 단순 부도위험이 아니라 경영진이 불리한 가격에 자산과 재고를 팔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기간입니다. 시간이 길수록 운영 선택권의 가치가 커집니다.
경쟁사 감산과 점유율
경쟁사의 감산을 활용할 능력은 비용충격을 시장점유율과 가격 회복의 기회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산업 공급이 줄면 남은 생산자의 가동률과 단가가 개선될 수 있지만, 설비를 돌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주문이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제품 인증, 재고, 물류, 영업망과 운전자본이 함께 준비돼야 빠진 물량을 실제 매출로 흡수할 수 있습니다.
LyondellBasell은 2025년 옥시퓨얼 마진이 여름 대부분 동안 신규 생산능력의 압박을 받다가, 연말 산업 다운타임이 늘면서 개선됐다고 설명했습니다. 2025년 2분기에는 업계 셧다운이 스타이렌 마진을 지지했고, 정비를 마친 북미 설비의 높은 가동률이 폴리에틸렌 물량과 마진을 개선했습니다. 경쟁사 공급감소와 자사 설비 신뢰성이 동시에 있어야 점유율 기회가 생긴다는 근거입니다.
BASF의 2025년 Chemicals 부문 설명도 비슷한 역학을 담고 있습니다. 회사는 전년 상반기 수요가 홍해 충돌과 경쟁사 비계획 셧다운, 일부 생산설비 폐쇄의 지원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외부 충격이 전체 수요를 늘리지 않아도 경쟁사 공급차질은 남은 기업의 주문과 가격을 일시적으로 지지할 수 있습니다. 이 효과가 지속되는지는 수입품 유입과 신규 증설, 고객 재고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감산 뉴스를 볼 때 생산을 줄인 기업만 분석해서는 부족합니다. 어떤 제품과 지역에서 몇 톤이 빠지는지, 대체 수입이 가능한지, 남은 기업의 여유능력과 재고가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공급을 유지하는 기업이 추가 물량을 받아도 가격 할인과 물류비가 커지면 증분 기여이익은 낮을 수 있습니다. 점유율 상승과 가치창출을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됩니다.
경쟁사의 감산이 기회가 되는 조건은 세 가지입니다. 수요가 완전히 붕괴하지 않아야 하고, 빠진 제품을 자사 설비가 고객이 요구하는 규격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하며, 추가 재고와 매출채권을 감당할 현금이 있어야 합니다. 제품·공정·재무 선택권이 한 지점에서 만납니다. 이 셋 가운데 하나가 없으면 감산은 산업 전체의 침체 신호에 가깝습니다.
기업 회복력의 판정 순서
기업 회복력은 노출도보다 제품·공정·재고·유동성·경쟁대응의 선택권을 순서대로 봐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첫 단계는 에너지 집약도를 직접비와 공급망 간접비로 나누는 일입니다. 매출 대비 에너지비뿐 아니라 주요 원재료와 물류비가 에너지 가격에 얼마나 연동되는지 확인합니다. 여기까지가 충격의 크기입니다.
두 번째는 제품 선택권입니다. 제품별 기여이익, 고객 인증, 대체재와 전환 가능한 생산능력을 봅니다. 가격을 올린 뒤에도 주문이 유지되는 제품과 수입품에 노출된 범용 제품을 구분해야 합니다. 평균 판매가격보다 믹스와 물량의 동시 변화가 중요합니다.
세 번째는 공정 선택권입니다. 원료 대체, 생산라인 전환, 피크전력 회피, 최소 가동률과 재가동 비용을 확인합니다. 에너지 사용량이 줄었는데 생산량이 더 크게 감소했다면 효율개선이 아니라 가동률 하락일 수 있습니다. 단위당 에너지 소비와 단위당 고정비를 함께 봐야 합니다.
네 번째는 현금 선택권입니다. 재고일수, 매출채권과 매입채무, 영업현금흐름, 가용 유동성, 차입만기와 필수 투자액을 대조합니다. EBITDA가 안정돼도 운전자본이 현금을 흡수하면 선택 가능 기간은 짧아집니다. 반대로 손익이 약해도 재고와 투자 조정으로 현금을 확보한 기업은 충격 이후 생산을 재개할 여지가 있습니다.
마지막은 경쟁 대응입니다. 경쟁사 감산, 수입물량, 산업 가동률과 자사의 여유능력을 놓고 증분 기여이익을 계산합니다. 산업 공급이 줄어도 수요가 더 빠르게 감소하면 점유율 기회는 생기지 않습니다. 수요가 남고 자사 설비·재고·현금이 준비돼 있을 때만 감산이 가격과 물량 회복으로 이어집니다.
이 순서는 개별 기업의 목표이익이나 종목 순위를 만들기 위한 공식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공시에서 운영 선택권을 추정하는 점검 순서입니다. 가동률, 제품믹스, 재고, 영업현금흐름과 경쟁사 생산계획이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판단의 확신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한 지표가 어긋나면 원인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이 판단이 빗나갈 수 있는 경우
반대 시나리오는 에너지 충격이 짧고 현물가격과 물류가 빠르게 정상화되는 경우입니다. 이때 복잡한 운영 선택권보다 단순 에너지 집약도가 단기 손익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계약과 재고가 갱신되기 전에 가격이 돌아오면 공정·믹스 전환을 실행할 필요도 줄어듭니다. 운영 유연성의 가치는 실현되지 않은 보험에 머뭅니다.
제품과 설비가 사실상 표준화된 산업에서는 기업별 선택권 차이가 작을 수 있습니다. 고객 인증, 생산수율, 원료와 자금조달 조건이 비슷하고 경쟁사가 동시에 움직인다면 에너지비 비중과 계약주기가 마진분산의 대부분을 설명합니다. 차이를 만들 변수가 적기 때문입니다.
감산의 가격효과도 수입과 신규 증설이 채우면 약해집니다. 지역 경쟁사가 생산을 줄여도 해외 저가물량이 즉시 유입되면 남은 기업의 가동률과 가격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제품 대체가능성이 기업에는 기회지만 고객에게는 협상력이라는 반대 효과가 생깁니다.
공시 한계도 큽니다. 기업은 라인별 최소 가동률, 원료 전환비용, 고객 인증기간과 재고의 물량·단가 효과를 완전히 공개하지 않습니다. 공개된 가동률과 현금흐름으로 유연성을 추론할 때는 단정 강도를 낮춰야 합니다. 실제 생산계획과 주문 흐름이 확인되기 전에는 가능성과 실행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충격의 기업 비교
에너지 집약도는 어느 기업이 비용충격을 크게 맞는지를 알려줍니다. 그러나 어느 기업이 마진과 현금을 지키고, 경쟁사 감산 이후 더 강해지는지는 알려주지 못합니다. 제품 대체가능성, 공정 유연성, 재고회전, 자금조달과 공급공백을 흡수할 능력이 그 다음 결과를 만듭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업 비교를 한 줄 순위보다 경로 분석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에너지비가 오른 뒤 제품믹스가 개선되는지, 가동률 조정이 재고와 현금을 줄이는지, 영업현금흐름이 필수 투자를 감당하는지, 경쟁사 감산이 실제 주문과 기여이익으로 연결되는지를 순서대로 봐야 합니다. 마진율은 이 선택들의 결과이지 출발점이 아닙니다.
충격기에 강한 기업은 에너지를 적게 쓰는 기업과 반드시 같지 않습니다. 불리한 공정을 줄이고 유리한 제품으로 옮길 수 있으며, 재고를 현금으로 바꾸고, 필요한 투자를 계속하면서 경쟁사의 빈자리를 받을 수 있는 기업이 더 오래 버팁니다. 운영 선택권과 재무 선택권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이 분석 뒤에는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기업이 가격·물량·현금으로 흡수하지 못한 비용을 정부가 보조금과 규제로 떠안으면 충격이 사라지는지, 아니면 세금·국채금리와 민간 자본비용으로 이동하는지입니다. 기업이 흡수하지 못한 비용을 정부가 지원할 때 부담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다음 글에서 봅니다.